마릴린 먼로는 배우로 활동한 기간의 상당 부분을 '코미디 배우'라는 딱지를 떼어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녀는 스크린을 환하게 밝힌 여자 코미디언 가운데 가장 본능적인 코미디 감각을 지닌 이 중 하나였다. 먼로의 가장 뛰어난 두 편의 코미디 「7년만의 외출(1955)」과 「뜨거운 것이 좋아(1959)」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작품이다. 어머니의 정신질환으로 먼로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 어린 그녀를 학대하던 양부모의 집과 고아원을 전전하며 매우 불안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약물중독과 자궁의 병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몇 시간이나 늦게 나타나고 간단한 대사도 외우지 못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심한 폐를 끼치는 일도 있었다. 「7년만의 외출」 이후 와일더는 다시는 그녀와 일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일단 그녀를 보기만 하면 언제나 그녀를 용서하게 되더군요."
존 휴스턴은 「아스팔트 정글」의 천진한 정부 역에 먼로를 캐스팅함으로써 처음으로 연기할 가치가 있는 역을 맡긴 사람이었다. 10년 후 그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에 그녀를 다시 캐스팅했고, 자신의 완성된 마지막 작품이 된 이 영화에서 먼로는 불운한 세 명의 카우보이와 얽히는 외로운 이혼녀를 연기했다. 그녀는 약물중독과 싸우고 있었고, 그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아서 밀러와의 결혼생활은 파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10년의 세월 동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배우이자 최고의 섹스심벌이 되어있었다.
금발머리와 어린 소녀 같은 목소리, 천진난만한 순수함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 몸을 흔들며 걷는 특유의 그 유명한 걸음걸이로 더욱 강조된 육감적인 몸매에 팬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먼로는 자신을 스타덤에 올린, 와일더의 코미디와 혹스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등에서 너무 부각된 섹시함과 순진하지만 관능적인 이미지를 혐오했다. 1954년에 조 디마지오와의 짧았던 결혼생활 동안 더 많은 대중의 관심이 그녀에게 쏠렸다. 진지한 배우로 대접받고 싶은 열망에 로렌스 올리비에와 함께 「왕자와 무희」에도 출연했지만, 그들은 서로를 싫어했고 영화는 실패했다.
이미 아이콘적 존재가 되어 있었음에도 먼로의 불안정함은 더욱 깊어만 갔고, 촬영장에서의 무책임한 행동도 더 심해졌다.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와의 관계도 불발로 끝났다. 이전에도 몇차례 자살기도가 있었는데, 결국 36세의 나이에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 약물과다복용도 스스로 내린 결정인지도 모른다. 물론 살인의 의혹도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멍청한 이미지 걷어내기
먼로에게는 언제나 그녀가 보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생각하는 방식 사이에 고통스러울 정도의 차이가 존재했다. 그녀는 급속도로 스타덤에 오르기 전에도 이미 자신을 향상시켜야한다는 열망을 갖고 있었고, UCLA에서 문학 강좌를 듣고(톨스토이와 밀턴, 휘트먼을 비롯한) 수백 권의 장서를 모았으며, 베토벤을 들었다. 1950년대에는 여배우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해 연기의 스승 리 스트라스버그에게 연기를 배웠다.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하여 대중을 깜짝 놀라게 했던 1956년에는, 「버스정류장」으로 코미디가 아닌 드라마 연기도 잘 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 (501 영화배우, 2008. 8. 29.,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 정지인)